2025. 3. 9. 22:40ㆍColumn

한국의 채용 문화는 오랫동안 대기업 중심의 정기 공개채용(공채) 관행과 신입 위주의 인재 선발에 기반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기업들은 숙련된 인력을 즉시 확보하기 위해 경력직 채용을 대폭 확대하고, 채용 방식도 연 1~2회 정기 공채에서 필요에 따라 수시로 뽑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의 인력관리 전략과 노동시장 구조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노동시장에 갓 진입하는 청년층의 고용 기회 축소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본론에서는 경력직 채용 증가가 기업 인사전략과 노동시장 구조에 미치는 영향, 경력직 채용 선호로 인한 청년 고용 위축 및 이중구조 문제와 이를 완화하기 위한 정책 방안을 살펴본 뒤, 기업들의 정기 공채 폐지와 수시 채용 전환 배경 및 그에 따른 노동시장 구조상의 변화를 논의하겠다.
경력직 채용 증가: 기업 인력관리 전략과 노동시장 구조에 미치는 영향
과거 평생직장 개념이 강했던 한국 고용문화는 최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디지털 혁신과 기술 융합 등으로 필요한 직무 역량이 고도화됨에 따라, 신입사원을 장기적으로 육성하기보다 즉시 성과를 낼 수 있는 경력 인력을 선호하는 추세이다. 실제로 경력직 채용 증가는 기업이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며, 숙련된 인재를 신속히 확보함으로써 인력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기업들은 필요할 때마다 적합한 인력을 뽑는 직무 중심 수시채용으로 전환함으로써, 대규모 공채 후 배치 과정에서 발생하던 인력 미스매치와 신규 인력의 조기 이직으로 인한 비용 손실을 줄이고자 한다. 그 결과 채용 시점과 규모를 유연하게 조정하는 인력관리 전략이 확산되었으며, 일부 기업은 애자일(Agile) 조직 등을 도입하여 1년에 한두 번씩 인력을 뽑는 방식 자체가 현실에 맞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경력직 위주의 인사전략 변화는 노동시장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선 근로자의 이동성과 경력 관리가 중요해지면서, 한 직장에서 장기 근속하기보다는 경력을 개발하며 이직을 통해 커리어를 발전시키는 풍토가 강화되고 있다. 기업들도 외부 인재 영입을 인력 전략의 한 축으로 삼게 되면서, 재직자들은 경력 개발 기회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며 노동시장 내 순환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게 되었다. 한편, 기업들의 경력직 선호는 노동시장에서 경력 보유자와 신규 진입자 간 구조적 격차를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즉, 이미 일자리 경험이 있는 내부 노동시장 참가자들은 좋은 일자리로 계속 이동하는 반면, 경력이 없는 외부 참가자들은 처음부터 진입 장벽에 직면함으로써 노동시장이 경력자 중심의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결국 경력직 채용 증가는 기업에 즉각적인 인력 활용 이점을 주었지만, 노동시장 전체로 보면 신규 인력 채용 감소와 인재 육성 기회 축소라는 구조 변화를 가져왔다.
경력직 채용 확대의 부정적 효과: 청년 고용 위축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경력직 위주의 채용 확대는 노동시장에 갓 진입하려는 신규 졸업자와 청년층에게 상당한 취업 문턱 상승을 야기하고 있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경력직 채용이 늘어난 최근 몇 년간 경력이 없는 구직자의 취업 확률은 한 달에 1.4%로, 경력 보유자(2.7%)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업무 경험이 부족한 20대 청년층의 상용직 고용률은 30대보다 17%포인트나 낮으며, 이러한 세대 간 고용률 격차 중 약 7%포인트는 경력직 채용 확대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취업 기회의 감소로 첫 일자리를 얻는 시기가 지연되면서 청년들의 평생 취업 기간이 평균 2년 줄어들고 생애 총소득도 약 13% 감소할 것이라는 추정까지 나와 있다. 결국 기업들이 경력자 채용을 늘리는 동안,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으라는 것이냐”는 청년들의 하소연이 나올 정도로 이들의 좌절감이 커지고 있고, 취업 준비를 포기하고 니트(NEET)로 남는 청년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 한 세대의 인적자원이 노동시장 밖에 머무는 심각한 사회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경력직 위주 채용이 청년층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와 맞물려 더욱 심화된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1차 시장(대기업·공공기관의 정규직 등)과 2차 시장(중소기업·비정규직 등)이 뚜렷이 이원화되어 있는데, 경력직 선호로 인해 1차 시장의 기존 인력은 계속 순환되지만, 신규 진입자들은 1차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채 2차 저품질 일자리나 실업 상태에 머무르기 쉽다. 문제는 일단 2차 노동시장에 머무르면 상위 시장으로의 이동 경로가 거의 막혀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비정규직 등의 열악한 일자리에서 1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한국에서는 10.1%에 불과해 주요 선진국 대비 크게 낮은 수준이며, 한 번 격차가 벌어지면 좀처럼 좁히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경력직 채용 확대 추세는 이런 이중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여 노동시장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이미 취업에 성공한 30대 경력자들은 더 나은 조건의 일자리로 재취업하고, 20대 청년은 경력 부족으로 계속 취업 문에서 탈락함으로써 “취업 있는 청년 vs 없는 청년” 간 격차가 커지는 것이다. 이는 세대 내, 세대 간 고용 불평등을 낳아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장기적으로 경제 활력도 떨어뜨릴 수 있는 위험 요인이다.
이러한 부정적 효과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정책적 대응과 사회적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청년들이 경력을 쌓을 기회를 확대하여 경력직 중심 채용 문화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학과 기업의 산학협력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인턴십·현장실습 등의 경력 개발 기회를 대폭 늘려서 젊은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실무 경험을 축적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은 협력하여 이러한 경험이 공식적인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신입 채용 시 경력이 없더라도 역량 중심의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채용 문화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를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 격차와 복지·고용안정성 차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노동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청년들이 처음부터 무조건 대기업 정규직만 고집하지 않고 진입이 비교적 쉬운 중소기업에서라도 경력을 시작할 유인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들에게 임금 보조나 근로환경 개선을 지원하고, 비정규직으로 시작해도 향후 정규직 전환이나 대기업 이직의 경로를 개설해준다면 2차 시장이 경력의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기업의 청년 채용 장려금, 세제 혜택 등을 통해 기업들이 신입 채용을 완전히 외면하지 않도록 유도하고, 사회 전반에 공정한 채용 문화 정착을 위해 감시와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다각도의 대응을 통해 경력직 채용 확대에 따른 청년 고용 위기를 완화하고, 세대 간 균형 있는 고용 기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정기 공채에서 수시 채용으로의 전환: 배경과 노동시장 구조의 변화
정기 공개채용은 한때 우수 인재를 선발하고 공정성을 담보하는 장치로 여겨졌으나, 최근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이 제도를 폐지하고 상시·수시 채용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가속화되었다. 실제로 현대자동차를 시작으로 LG, 롯데 등이 잇따라 공채를 없앴고, SK그룹도 마지막 정기 공채를 실시한 후 폐지를 공식화하였다. 이로써 불과 2년 만에 국내 5대 그룹 중 4곳이 정기 공채를 폐지하여, 당시 삼성만이 남았을 정도로 대기업 채용 관행이 급변했다. 이후 삼성마저 공채를 축소하거나 폐지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제 대졸 신입 정기 공채는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진 상황이다. 한 취업포털 조사에 따르면 2년 사이 기업의 정기 공채 실시 비율이 50%에서 36%로 급감하는 등, 대규모 공채 중심 채용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정기 공채가 사라지고 수시 채용이 확산된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존재한다. 우선 산업 구조의 변화와 기술 발전으로 기업이 요구하는 직무 역량이 세분화되고 전문성이 강조되면서, 일괄적으로 신입을 뽑아 순환배치하는 전통 방식으로는 적재적소에 인재를 투입하기 어려워졌다. 기업은 필요한 부서에 즉시 투입 가능한 맞춤형 인재를 원하게 되었고, 연중 수시로 채용 시점을 조절하면서 채용 탄력성을 높이고 있다. 또한 시장 변화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민첩한 조직운영(Agile)을 도입한 기업들은 프로젝트 단위로 인력이 유동적으로 운용되기 때문에 1년에 한두 번 정기적으로 사람을 뽑는 기존 방식으로는 대응이 어렵게 되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애자일 조직 체계 전환과 함께 정기 공채 폐지를 결정하며, 변화하는 환경에서 상시 인력보강 체제가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글로벌 기업들도 이미 대졸 신입 대규모 공채를 운영하지 않는 곳이 많아(BMW, 메르세데스벤츠 등은 애초에 정기 신입 공채 제도가 없음), 한국 기업들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채용 방식을 바꾸는 측면이 있다. 이밖에 기업 입장에서는 매년 대규모 공채를 진행할 경우 수만 명의 지원자를 한꺼번에 처리해야 해 우수 인재를 가려내기 어렵고, 필기시험과 면접 준비에 드는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게다가 공채로 일괄 채용된 신입들이 희망 직무와 다른 부서에 배치될 경우 조기 이직으로 이어져 기업에 손실이 발생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채용 효율성을 높이고자 정기 공채 축소를 고민해왔다. 성장 정체로 해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신입을 뽑기 어려워진 경제 여건도 이러한 변화에 한몫했다는 분석이 있다.
정기 공채에서 수시 채용으로의 전환은 노동시장에 구조적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먼저 구직자들의 행동 양식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대학 졸업 시기에 맞춰 상·하반기 공채 시즌에 집중적으로 취업 준비를 했지만, 이제는 연중 상시 채용에 대비해 수시로 채용 정보를 탐색하고 필요하면 졸업 전에 인턴 경험을 쌓는 등 지속적인 대비가 요구된다. 이에 따라 취업준비생들은 과거보다 장기적인 취업활동을 해야 할 수도 있고, 채용 기회가 수시로 산발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기회의 예측 가능성이 낮아져 심리적 부담이 커졌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채용 절차가 수시로 개별 기업별로 진행되면서, 채용 정보 비대칭이나 스펙 경쟁 심화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공채가 폐지되면 기업 채용이 불투명해져 친인척·학연 등에 의존한 채용 비리나 편견이 개입할 소지가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공정성 논란도 제기되었다. 실제로 대기업 공채 폐지 후 채용 규모가 축소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있는데, 현대자동차의 경우 공채 폐지 후 2년간 정규직원이 400명 감소했고 LG전자도 1년 만에 1,600명 줄어들어 실제 신입 채용이 위축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기업들은 “정기에서 수시로 바꿀 뿐 채용 인원 총량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으나, 수시채용으로 전환한 초기 단계에서 채용 축소에 대한 불안감이 구직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수시 채용 체제 자체는 장단점이 있다. 긍정적으로는, 구직자들이 일년에 한두 번뿐인 공채 기회를 놓치면 다시 기다려야 했던 과거와 달리 더 많은 지원 기회를 가질 수 있고, 기업도 필요할 때마다 인재를 확보하므로 미스매치 감소와 채용 적시성 제고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구조적으로 신입 채용보다 경력직 채용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어 앞서 논의한 청년층의 초기 경력 형성이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또한 한꺼번에 다수의 신입을 뽑아 교육·훈련시키는 방식이 줄어들면서, 기업 내부의 인재 양성 시스템이 약화되고 그 부담이 개개인과 사회 교육기관으로 전가될 수 있다. 요컨대 정기 공채→수시 채용 전환은 시대 흐름에 따른 불가피한 변화이지만, 그로 인한 노동시장 진입 환경 변화에 맞춰 구직자와 기업, 정부 모두 새로운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을 중심으로 한 경력직 채용 증가와 채용 방식의 변화는 기업과 노동시장 모두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기업들은 필요 인재를 제때 확보하며 경쟁력을 유지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여파로 경력이 없는 청년층은 일자리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고용 격차가 벌어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특히 청년 고용 감소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는 세대 간 불균형과 사회 양극화로 이어질 수 있기에, 이를 완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중요하다. 경력직 채용 확대 흐름 속에서도 미래 인재인 청년을 육성하고 활용하기 위한 노력 – 예를 들어 실무역량 교육 강화, 공정한 채용 관행 확립, 대·중소기업 간 격차 축소 – 이 병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정기 공채에서 수시 채용으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 만큼, 새로운 환경에서 기업과 구직자 모두가 적응력을 높이고 정부는 제도적 보완장치를 마련함으로써, 경력직과 신입이 조화를 이루는 지속가능한 노동시장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